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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 쓰는 방 (187) 목욕탕에서 길을 묻다

 

솔직한 것은 자신 있다

꾸며대고 과장하기는 어색하지만

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는 건 해볼 만하다

 

숨기고 감추고 사는 것보다는

부끄럽고 초라해도 꺼내놓고 나면 편하니까

 

밥 먹고 나면 치아에 음식물이 끼듯이

화장실 가면 모두 냄새가 나듯이

세균 하나 없는 인간이 있을까?

 

목욕탕만 가봐도 알 수 있다

모두들 재각기 살아간다는 걸

웃통 훌훌 벗고 속옷까지 벗고 나면

처음에 쭈뼛거리고 의식되다가도

잠시 후 그 누구보다 자유롭다

 

한 가지 자신 있다면

다른 이들보다 투명한 삶을 사는 것이다

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삶이지만

다른 이들이 들여다봐도 괜찮다고 느끼는 삶 말이다

 

화려하고 잘나서가 아니라

호기롭게 용감하여 펼쳐 보이는 인생 말이다

 

혼자 씻고 계신 할머니의 등을 보면

그냥 지나치지 못하고

등 한번 밀어 드리고

 

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

말 한번 걸고 도와주려는 사람

 

목욕탕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

따뜻한 커피 한잔 건네는 손길 말이다

 

커다란 호수나 강물이 못되더라도

작은 산골 또랑이라도 되자

 

아주 얇은 물줄기라도 흐른다면

그 물이 길이 되겠지

 

작은 물고기라도

작은 생명체라도 살겠지

 

다 잃어버려도

다 부서져버려도

인생의 굳은 뜻만은 놓치지 말자

 

강물처럼 흘러 흘러

사랑을 전하는 길이 되자

통로가 되자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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